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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단체

신심단체 –

레지오마리애 (Region of Mary)

† 본당 레지오
  • 활동: 46개의 쁘레시디움에 속한 382명의 단원이 각 요일 별로 나누어 주 회합을 하며 전교와 봉사활동을 합니다.
  • 구성: 1개의 꼬미시움(순교자의 모후)와 3개의 꾸리아(평화의 모후, 복된 성체의 모후, 사랑의 모후)로 되어 있으며, 산하에 쁘레시디움이 속해있다.
  • 단원자격: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는 사람으로서 평신도 사도직을 실천하려는 의욕과 단원의 의무를 완수하려는 각오가 되어 있는 교우가 소정의 과정을 마치고 12주의 주 회합 출석 후 입단 선서를 해야 합니다.
  • 입단문의: 꼬미시움 단장 혹은 각 쁘레시디움 단장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Legion of Mary)

가톨릭 평신도 사도직 단체의 하나로 회원은 적어도 일주일에 2시간 사목활동을 도와 봉사한다. 이 단체는 1921년 9월 7일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시에서 20대의 젊은 여성 15명이 빈민원의 환자 방문 계획을 세우기 위해 모인 데서 시작되었다. 레지오 마리애의 모체가 되었던 이 모임의 명칭이 ‘자비의 모후’이었던 관계로 이 조직은 처음 ‘자비의 모후회’로 불려졌으나 1925년 11월 간부회의에서 옛 로마군대를 본뜬 레지오 마리애(Legio Mariae, 마리아의 군대)라는 명칭을 채택하였다. 이 단체의 조직명칭도 자립지부(自立支部)를 프레시디움(praesidium), 두 개 이상 지부로 된 지방본부(地方本部)를 쿠리아(curia), 전국본부(全國本部)를 세나투스(senatus), 더블린에 있는 세계본부를 콘칠리움(concilium)이라고 부르는 등 로마군대 용어를 쓰고 있다.

레지오 마리애는 그 후 아일랜드 내에서 점차 조직이 확대되어 1928년부터는 해외로 뻗어 나갔다. 현재 이 단체는 전 세계 1,500개 이상의 교구에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 레지오 마리애가 진출한 것은 1953년 5월의 일로서 광주교구장 헨리(Henry) 주교 지도 아래 목포시 산정동 본당에 ‘치명자의 모후’와 ‘평화의 모후’ 프레시디움, 경동본당에 ‘죄인의 의탁’ 프레시디움이 각각 처음 탄생하였다. 이후 이 운동은 전국 각 본당으로 급속히 확장되어 나갔다. 서울에는 1955년 8월, 명수대(현 흑석동) 본당에 ‘평화의 모후’ 프레시디움이 설립됨으로써 뿌리를 내리게 되었는데 초대 지도신부는 이경재(李庚宰, 알렉산데르) 신부였고, 단장은 신태민(申泰旼, 토마스) 형제였다. 이어 1957년 1월 29일에는 서울에 생겨난 기존 프레시디움을 모아 혜화동 본당에 ‘상지의 좌’ 쿠리아가 설립되고(지도신부 : 정원진 신부, 단장 : 이해남), 1959년 3월 15일에는 명수대 본당에 ‘평화의 모후’ 쿠리아가 설립되어 점차 조직을 굳혀 나갔다. 당시 프레시디움은 모두 11개에 달했고 행동단원이 128명, 협조단원이 658명이었다. 이리하여 1960년 3월 30일에는 서울 세나투스의 전신인 서울 무염시태 코미시움이 설립되었고 1974년 9월 25일 레지아로 승격을 거쳐 1979년 12월 23일 마침내 서울 대교구에서 국가 단위 평의회인 세나투스가 정식으로 발족되었다. 이와 같이 한국에서 레지오 마리애 운동이 정착, 발전되기까지에는 많은 논란과 문제점도 적지 않았는데 이의 해결에는 노기남(盧基南) 대주교와 헨리 대주교의 적극적인 지도 격려가 큰 밑거름이 되었다. 특히 당시 서울대교구장이었던 노 대주교는 매월 코미시움 월례회의에 참석하여 직접 훈화도 하고 레지오 활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여 활기를 불어 넣어 주었다. 세나투스 발족 당시의 조직현황을 보면 5개 코미시움, 45개 쿠리아, 705개 프레시디움, 1만 598명의 행동단원, 1만 7,478명의 협조단원이었고 전국 총 222개 본당 중 187개 본당에 레지오가 설립되었다. 서울 대교구만도 1개 코미시움, 25개 쿠리아, 426개 프레시디움, 6,077명의 행동단원이 있고 협조단원은 1만 1,787명, 100개 본당 중 97개 본당이 조직을 완료하였다. 그 후 1980년 10월에는 지역적 여건을 고려하여 청주, 대전이 서울로 흡수됨에 따라 세나투스로 승격된 서울 대교구 레지오 마리애는 7개 교구를 관할하게 되고 세포조직이라 할 수 있는 프레시디움은 계속 확장되어 갔다.

그 동안 주요 행사로는 1980년 11월 22일의 제1차 민족복음화대회와 1981년 5월 5일에 열린 제2차 민족복음화대회를 들 수가 있는데 1차 대회는 레지오 서울 도입 25주년을 겸해 서울에서, 2차 대회는 레지오 마리애 창설 60주년과 수원 레지아 승격을 기념해 수원에서 각각 열려 단원을 모두가 민족복음화의 기수가 될 것을 다짐하였다. 1차에는 1,500여 단원이, 2차에는 3만 5,000여 단원들이 모인 대회에서 서울 세나투스 총재 (고)김수환(金壽煥, 스테파노)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참다운 민족의 복음화는 신자수와 성당수의 증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처럼 사는 사람이 많을 때 가능하다”고 강조하였다.

현재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전국적으로 행동단원 4만 3,303명, 협조단원 5만 1,738명, 계 9만 5,041명의 단원을 가지고 있으며 서울만도 5만 7,955명(행동단원 2만 4,574명, 협조단원 3만 3,381명)의 단원을 보유하고 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는 아시아 협의체 설립문제, 각국과의 교류 협력문제, 해외교포 사목 협력방안 등도 앞으로의 과제로서 활발한 논의를 벌이고 있다.

[참고문헌] 서울대교구 편, 서울대교구 교구總覽, 가톨릭出版社, 1984.

연령회

† 연령회
  • 목적 및 활동: 선종하신 모든 이들을 위해 기도와 전구를 바침으로써 모든 성인들의 통공(通功)에 참여하여 본당 교우 및 대세자의 선종 준비를 돕고 그 장례예절 일체에 참여하며 기도와 봉사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 가입문의: 연령회장 혹은 연령회 봉사자에게 문의 (회원 회비 연 $20)

교회는 장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명을 찾아가는 우리 신자들의 부활 신앙을 북돋아 주고, 그리스도 파스카 제사인 미사를 봉헌하며,
기도와 전구로서 서로 통공 하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인 교우들의 영신적 도움과 위로를 주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교우가 죽을 위험에 놓여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자주 그를 방문하여
선종 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합니다.
어느 가족이나 갑자기 상을 당하게 되면 당황하게 되니 지체 없이 본당 연령회에 연락주시기 바랍니다.
연령회에서는 헌신적 장례 봉사를 통해 지역 복음화의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문의 ☎ 02 8756 3333

1. 천주교식 장례 절차

천주교식 장례는 그 규범을 정해 놓은 [성교예규]에 따라 행합니다.
임종을 앞둔 환자를 위해서 해야할 일을 정리하여 보겠습니다.

1) 고통을 받는 환자를 위해 기도해 줌으로써 도와주어야 합니다.
큰 소리로 울어서 환자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수난과 즉음을 일깨워 주고 ,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를 느끼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성서나 기도문을 읽어 드려야 합니다.

2) 병자의 의식이 남아 있을 때 신부님에게 연락하여 병자성사를 받게 합니다. 병자성사를 준비할 때 가족들은 환자의 얼굴 눈 코 귀 입 손 발 등을 깨끗이 씻기고 준비한 옷으로 갈아 입힙니다.
또한 병자의 머리맡에 상을 하나 마련하여 그위에 백포나 백지를 깔고 십자고상과 촛대 두 개를 놓고 발치에 성수 그릇과 성수채(수저)를 준비해 두는 것이 좋습니다.

3) 병자의 임종이 가까와지면 정신을 잃기전에 유언을 받고 축복을 받습니다. 옛부터 가장은 죽기전에 자녀들에게 마지막 축복으로 하느님의 은혜를 빌었다.(창세기 27.27-30)이 축복은 준성사의 하나입니다.

4)임종이 임박하였으면 가족과 신자 공동체는 임종자에게 입맞춤을 하든지 손을 잡아줌으러써 혼자가 아니라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사랑과 일치를 표현합니다. 그리고 “예수여, 나를 구하소서!” 혹은 “예수 마리아!”를 부르게 합니다. . 환자가 부르지 못할 입장이면 십자고상이나 평소에 쓰던 묵주를 손에 쥐어 줍니다.
임종이 다가오면 임종경을 읽으며 그 영혼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염경은 숨이 그친 뒤에도 잠시 동안 계속하는 것이 좋습니다. 큰 소리로 통곡을 하거나 흐느끼게 되면 죽는 이의 마음에 불안을 주게 되므로, 기도소리를 들으면서 거룩한 마음으로 눈을 감게 도와 드려야 합니다.

5) 임종하였으면 별세하였다는 사실을 교회에 알립니다.. 이것은 곧 공동체에 알리리는 것이고 기도를 청하는 것이 되며 본당 연도회에 도움을 청하는 것이 됩니다. 알릴 때 보고 사항은 운명일시 및 장소, 병명, 성명 및 세례명 등입니다 또 장례절차를 천주교 식으로 할 것에 대하여 가족들과 의논을 하여야 하며 교회에 임종을 알릴 때 장례미사에 대한 절차에 대하여 조언을 구하며 교회묘지를 쓸 경우 연도회에 의논을 드립니다.

6) 시신에는 깨끗한 옷을 입혀 양손은 깍지를 끼우거나 약하게 묶어 손발을 제자리에 정돈해 둡니다. 손에는 십자고상을 살짝 끼우듯이 쥐어 주고, 눈은 감기고 입은 다물게 하며 처음은 얇은 이불로 하반신을 덮어준후 6시간이 지나 염습을 하고 수의를 입힙니다.
가족들은 그동안 슬픔을 표시하는 곡보다는 그 옆에 꿇어 앉아 고인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는 주의 자비하심을 비는 기도 임종기도와 연도를 드립니다. 머리맡의 상 위에는 고상을 모시고 그 좌우에 촛불을 켜며, 사진 2매(높이 편지지 크기)를 준비하여 한매를 상위에 놓아둡니다.

7) 만 하루가 지나서야 정해진 경을 왼뒤 성수를 뿌리고 입관을 합니다. 연도와 문상온 손님들에게는 가족들이 정중한 인사를 드립니다. 예를들면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혹은 “많이 기도 해 주시기 바랍니다.”등의 대답을 합니다.

8) 장례일이 되어 출관할 때는 모든이가 함께 관 앞에 고상을 향하여 꿇어 앉아 경을 욉니다. 이어 관을 들어 발인하여 영구를 본당으로 옮기고 연미사를 거행한뒤 장지로 옮깁니다.
장지로 옮겨 관을 묻으면 사제는 성수를 뿌리고 마지막 기도를 올립니다.
장례 후 3일 7일 또한 49제 대신에 고인이 돌아가신 40일째에 성당에서 연미사와 가족의 영성체를 행하며 고인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기도 합니다.

2. 장례절차시 도움말

북침(운명 후에 머리를 북쪽으로 두어야 한다는 것)에 관계없이 방의 구조에 따라 편리하게 모십니다. 고복(초혼이라고도 하는데 사람이 죽으면 혼이 몸에서 떠난다고 하여 지붕 위에 올라가서 혼을 다시 불러 몸에 들게 한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발상(상을 알리는 뜻으로 한쪽 팔을 뺀채 두루마기를 입고 머리를 풀어 곡하는 것)은 표준 가정의례 준칙에 따라 검은 평상복을 입고, 상중이라고 써서 문밖에 붙이고 초롱을 밝히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생시와 같이 밥상을 두는것은 하지 않고 유족의 정성을 표시하는 꽃으로 대신합니다.

염습(시신을 깨끝이 씻긴후 귀와 코를 막고 수의를 입히는 것)은 운명 후 6시간 후에 합니다.
(숨이 끊어졌다고 해서 확실히 죽었다고 단정지을수 없기 때문에)

설전(상을 당하고 처음으로 드리는 제사)은 위령기도(연도)로 대신합니다.

반함(시신의 입안에 구슬과 쌀을 넣는 것)은 하지 않습니다.

소렴,대렴(수의를 입힌다음 시신을 종횡으로 묶는것)은 손발이 흩어지지 않게만 합니다.

입관(시신을 관 속에 모시고 봉하는 것)은 운명 후 적어도 24시간 후에 해야 한다.입관예식은 가족들이 촛불을 켜 들고 ‘입관기도’를 한 다음 유족대표가 성수를 뿌리고 잠시 묵념을 하고 성가를 부르는 동안 관에 모시고 뚜껑을 덮은 후 온 가족이 다시 성수를 뿌리면서 “주여 누구 누구 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아멘” 합니다.

혼백(신주를 만들기 전의 임시 신위)은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영좌(혼백을 모시고 그 앞에 유품등을 놓는 것)는 십자고상, 사진(아래에 성과 세례명 기록),성초, 성수,향으로 대신합니다.

명정(홍색 천에 고인의 관직과 성명을 쓴것)이나 지석은 자유로이 할 수 있습니다.

치장(묘지 선정후 영전에 고하는 것과 산에서 올리는 토신제)는 생략되어야 합니다.

발인(출상) 예식은 발인기도, 고별사(유족대표), 분향(유족들만), 성수를 뿌림, 배례한 후 성가를
부르면서 운구합니다.

운구는 선두에 십자가와 양쪽에 촛대, 성수, 지도자(상여진행과 기도 지도), 영정과 꽃, 상여 혹은 관, 유족, 일반 조객의 순으로 합니다.

노제는 생략합니다.

성당에 도착하면 성당 입구에서 관을 운구 수레에 모시고 흑포를 덮고 사제가 나와서 입당예절을 할 때까지 기다리다가 십자가를 앞세우고 성당에 들어갑니다. 유족들은 제일 앞자리에서 미사에
참여합니다.

무덤에 도착하여 묘혈위에 괴목을 걸치고 관을 그위에 모셔놓고 싶자가와 촛대 잡은 이들이 상단에 서고 성수와 채를 든 이는 맞은 편 오른쪽으로 비켜서고 유족들도 둘러서서 기도한 다음 유족들과 신자대표가 차례로 관에 성수를 뿌립니다.

하관은 성수 뿌리기가 끝나면 유족들이 호곡 배례한 다음 하관하고 흙을 덮는다. 이때 신자들은 하관기도를 드립니다.

반곡(유족들이 집으로 돌아올 때 곡하는 것) 대신에 조용히 돌아오면서 고인이 남기신 말씀을 되새기며 성실히 살아 천국에서 만나기로 다짐하고, 집에 도착하면 다시 영정을 모시고 위령기도를 드립니다.

우제는 영정앞에서 위령기도를 드리는 것으로 대신하고 삼우는 미사를 청하여 참여합니다.

장례후부터 죽은이를 위하여 드리는 모든 기도와 예를 위령제라 합니다.
장례 후 3일, 7일, 40일에 연미사를 올리어 가족들이 함께 미사에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기일에 제사를 지내는 경우
제수:생시에 즐기시던 것으로 준비합니다.
신주와 지방을 쓰는 것은 미신에 직접 관련되므로 사진으로 대신합니다.

3. 문상하는 방법과 주의사항

부음을 듣는 즉시 단정한 옷차림과 기도하는 마음으로 상가를 찾아 가야 합니다.

먼저 시체 앞에 이르면 시체에 존경의 예를 드립니다.다.
성수를뿌리며 “주여, 형제(자매, 아버님, 어머님, 혹은 세례명)에게 영원한 안식을 허락하소서.
아멘” 혹은 주여 누구 누구를 당신 나라에 받아들이소서. 아멘”합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갔으면 대표자가 성수를 뿌리고 다른 이들은 “아멘”으로 동참합니다.

다음으로 분향한후 위령기도를 드립니다. 조객이 많으면 짧게 하여 다른 조객들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위령기도 후에 다시 성수를 뿌립니다.

유족들에게 슬픔을 자극하는 위로의 말을 삼가합니다.
신앙안에서 드리는 바람직한 인삿말은
앓다고 돌아가셨을 경우 “선종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천국에서 편히 쉬시리라 믿습니다.”
하는 인사를 합니다.
갑자기 죽었다면 “위로의 말씀을 드릴 길이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 하겠습니다”라고 합니다.

문상은 밤샘이나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너무 오래 지체하여 유족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합니다. 또한 조의금, 상가에 쓰일 물품,기도 궂은 일 등으로 서로 돕는 것은 좋은 일이나 상례절차에 대해서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유족들은 조객이 위령기도를 시작하면 급히 해야할 일이 아닌한 일손을 놓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울뜨레아

† 울뜨레아
  • 목적 및 활동: 꾸르실료(평신도 단기과정)교육을 이수한 교우들의 모임으로서, 교육과정에서의 가르침과 같이 “이상. 순종. 사랑” 의 평신도 사도직 수행을 목적으로한 평신도의 영성 향상을 위한 활동과 나눔을 합니다.
  • 정기모임: 매월 2째 주일 교중미사 후 전체 꾸르실리스따 들의 울뜨레아 회합이 있으며 년 2회 정기적으로 있는 마냐니따 미사는 주보에 공지합니다.

꾸르실료(cursillo)란 ‘복음화를 위한 단기교육’이란 뜻으로 일종의 교육과정인데 강습이나 과정과는 구별된다.
꾸르실료에는 인종, 국적, 피부색, 교육수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각기 다른 40여 명의 참가자들이 보통 목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3박 4일 동안 15개 과목의 강의를 들으면서 서로 토론하고 기도하며 형제애적인 사랑을 체험해 나간다.
꾸르실료에서 강조하는 것은 계명을 지키는 신심보다는 은총의 신심이다. 이러한 꾸르실료를 통하여 그리스도 교인으로서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세상을 복음화시키려는 운동이 꾸르실료운동이다.

이 운동은 1940년대 스페인의 주교인 후안 에르바스(Juan Hervas) 주교에 의해 시작되었다. 그는 사목생활을 하는 도중 많은 지성인들이 고민하는 모습과 불우청소년들이 저지르는 비행과 범죄행위를 목격하면서 어떻게 이들의 영적인 생활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인가를 깊이 연구하던 중 그들을 다시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특수한 교육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에 다라 에르바스 주교는 이들을 인도할 지도자를 모집하고 ‘순례 지도자의 꾸르실료’라는 이름을 붙였다. 꾸르실료운동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 제1단계(the precursillo stage)로 환경이 다른 사람들과 교제의 기회를 마련하여, 제2단계(the 3-day exercise stage)로 그들과 함께 꾸르실료를 가지면서 그들을 하느님과 더욱 굳건히 맺게 해 줌과 동시에 그들이 유능한 평신도 사도로서 역할을 다하게끔 한다. 제3단계(the postcursillo stage)로 꾸루실료에 참가한 사람들을 묶어 주어 유능한 사도로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히 활동하게 한다. 이 모임에 울트레야(ultreyas)라고 부른다. 꾸르실료운동은 꾸르실료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꾸르실료를 통하여 그리스도 교인 지도자를 양성하고 그리스도 교인의 생활을 쇄신함과 동시에 사회를 복음화 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꾸르실료운동에 있어서 울트레야는 특별히 그 중요성을 가진다. 우리나라의 꾸르실료운동은 1967년 꾸르실리스타(cursillista)인 주한 미 평화 봉사단장 케빈 오노넬에 의해 처음 소개되었다. 이에 따라 혜화동본당 교우들을 중심으로 꾸르실료운동이 한국에 그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이 후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각 교구마다 꾸르실료 사무국이 설치되어 있고, 중앙에는 주교회의의 인준을 얻어 중앙협의회 사무처를 두고 있다. 꾸르실료는 사목주교위원회에서 지도 감독한다.


ME봉사회

† ME봉사회
    • ME 목적: ME는 혼인한 부부들이 더 깊은 사랑과 풍요로운 혼인생활을 하기 위한 것입니다.
    • ME를 시작하는 방법: 본당에서 실시하는 첫 주말을 체험 함으로서 시작됩니다. (2년에 1회 교육실시. 주보공지)
    • ME활동: ME주말후에 ME를 경험한 사람들이 모여서 보다 더 낳은 혼인생활을 지속할 수 있도록 5-6부부가 한 조가 되어 월 1회 생활 나눔을 합니다.

 

Marriage Encounter

대화를 통해 부부관계를 새롭게 하여 결혼생활의 무한한 가능성을 발견케 함으로써 가정, 나아가 교회와 사회를 쇄신시키려는 운동으로 1958년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Gabriel Calvo) 신부와 몇몇 평신도에 의해 시작되었다. 청소년 지도 신부로 일하던 칼보 신부는 문제 청소년의 대부분이 가정문제로 인해 탈선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부부의 참된 만남(marriage encounter)만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는 길임을 인식하여 이 운동을 제창하게 된 것이다. 방법은 25쌍 내외의 부부와 지도신부가 한 팀이 되어 2박 3일간을 같이 생활하면서 성실하고 끊임없는 대화를 통하여 부부가 진정한 만남을 이루어 나가는 형식을 취한다. 이 운동은 그 후 전세계로 확산되었고 1976년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다. 초창기 이 운동을 우리나라에 소개한 사람은 도널드 매키니스(Donald Maclnnis) 신부. 서울시 중구 장충동 1가 54번지에 한국 매리지 엔카운터 본부가 있고 각 교구별로 매리지 엔카운터가 조직되어 있다.